D'sum/More

1Q84

갈섬 2013. 2. 25. 16:33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생소한 제목처럼 딱 그만큼 생소한 내용의 이야기이다. 모호한 장르(굳이 분류할 필요는 없겠지만)와 모호한 주제, 그래서 그런지 모호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모호함이라는 건, 책을 다 읽고서도 '그래 그렇지!' 하는 공감과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것이 원래 의도한 것이든, 그걸 담아낼만한 내 그릇의 깊이 문제이든, 어쨌든 그걸로 됐다. 단지 덴고 아버지의 말처럼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을 해줘도 모른다는 것'일 뿐이니까.

왜 그곳에 달이 두 개인지, 리틀피플들이 공기번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지어 두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의 이끌림의 명확한 이유조차도, 소설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철저히 '왜'라는 걸 배제한 것처럼...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인지, 혹은 왜 나는 나인지 조차도... 그리고 어느정도 일차적 답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결과에 놓고 다시 그 결과의 원인을 찾고자 하면 그건 좀 복잡해진다. 마치 분자를 쪼개면 원자가 되고, 그 원자 속의 핵과 전자, 다시 양성자 중성자, 다시 쿼크로... 그 근본의 꼬리가 길어지는 것처럼, 어떤 것의 절대 원인을 찾는 일을 사실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절대신을 만난다 해도 그 역시 답을 말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 역시 그 답을 알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묻기 싶을지도 모르며, 인간이랑 애초부터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 진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왜, 왜, 왜' 우리는 늘 원인을 찾아해맨다. 그러나 애초부터 답은 없었다. 새로이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다시 만들어진대도 그 답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건 애초부터 없는게 맞다. 우리에겐 어떤 결과를 예측할 능력이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건 동기와 의도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왜 감사하거나 괴로워하는지 이유를 찾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감사나 고통은 어떤 것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유일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매순간 우리가 결정하는건 결과로 연결되는 선택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의도일 뿐이다. 그래서,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여기 곁에 같은 것을 느끼는 내가, 그대가, 우리가 있으니까. 여기 곁에 같은 손을 잡은 그대가 있으니까.

그래 어쩌면 그의 '의도'는 우리가 같이 저 달을 한번 들여다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언제였는지 어디있는지조차 우리는 지금쯤 잊어가고 있었으니까...